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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중창불사

1차세미나 : 제1주제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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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18 09:39 조회2,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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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30년 넘게 실무를 하고 있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에 건축가의 생명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실상사에 와서 훌륭하신 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무척 뜻 깊게 생각한다.
저도 이상해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3년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문화재 심의를 받으러 가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문화재 심의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두 입장 사이에서 상당히 많은 차이도 느낄 수 있어서 특히 이런 주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1년에 10개 정도의 성보박물관 또는 유물전시관에 관계를 하다 보니까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끝없이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떻게든지 올바른 방법을 찾긴 찾아야 될 텐데, 실제로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참 어렵다.

이상해 교수님께서 발제문에서 이런 것을 조목조목 잡아주셨기 때문에 특별히 더 부연할 것은 없다.
이상해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크게 요약하면, “옛날 사찰은 수행공간과 예불공간의 적절한 균형과 배치가 주로 자연환경, 주변환경 또는 터에 많이 연유가 되었는데, 그것이 근대화 이후 점점 변질되고 있다. 사찰의 연원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는 채로 새로운 요구에 의해 즉자적으로 집어넣고 고치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사찰이 갖고 있는 경건함이나 집합적인 의미에서 전체성도 안 보이고 점점 파편으로 나타나는 것이 큰 문제다”라고 지적해 주셨다. 전적으로 저도 공감을 하고 여러분도 많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우리 나라 사찰의 경우 하나 하나의 건축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집합이 되었을 때, 옆에 다른 건물 전각과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의미가 생긴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것이 점점 하나하나 깨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사찰건축의 변화도 당연한 것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몇 천 년 동안 진행되어온 그런 것들이 본질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어져야 되는데 그게 끊어졌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재료로 달라지고 재료를 다루는 방법도 달라지고(예:손에서 기계 등) 이러한 기술의 변화 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그리고 사찰에서 필요한 쓰임새에 어떻게 맞출 것인가 ― 이런 것이 오늘 주제의 중요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지금 사회에 맞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런 문제가 오늘 제일 핵심이 될 것 같다.

이상해 선생님이 쓰신 말씀 중에 자주 쓰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보니, 생태, 공존, 공생, 균형… 이런 말씀을 아주 많이 여러 번 하셨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살아갈 때 아주 필요한 생각이고 지혜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것을 구현한다면 사찰건축은 자연히 원래의 모습대로 갈 수 있다고 본다.
선생님이 쓰신 말씀 중에 회복이라는 말이 있는데, 저도 이 말을 많이 쓴다.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끊어지거나 약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예전에 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진 정체성이 훼손된 부분을 보완하고, 자연과의 관계, 주변과의 관계를 빨리 회복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이미 산지의 지형이 깎여나가고 훼손되고 그랬지만, 새로운 필요에 의해 건물이 들어서면서 원래 가지고 있는 땅의 특성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드는 사람들이 - 스님, 기술자, 건축가라든지 이런 분들이 힙을 합쳐서 고민한다면 방법이 있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찰은 사회를 향해 열려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필연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을 가져야 할 테인데,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나의 대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기존사찰을 고쳐 쓰거나 그것도 어렵다면 경내 바깥으로 나가서 제2의 창사를 해야 한다. 정말 대중의 쓰임새를 고려해서 실제 가지고 있는 기능을 잘 구현해내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면, 새로운 터에다 제2의 창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전적으로 이에 공감한다. 

이제 옛날 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할 터인데, 지금 말씀해주신 주제는 지금 이 시기에 굉장히 정확하게 진단을 하시고,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정기용
저도 이런 중요한 자리에 함께 하게 되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이상해 선생님 발제는 이 시대 절집들의 불사에 대한 지침들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절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지난 30여년의 세월에 건설만이 살 길인 것 같았던 토건국가 시대에 절집도 비켜갈 수 없었던 중차대한 문제였다. 그 문제를 스님들과 절이 나서서 어떻게 새롭게 위치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 절집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봤을 때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이상해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에 우리 나라 사찰불사의 기본 지침을 만들어야 않겠는가 하는 것으로 모든 결론이 귀결이 되는데 제 생각은 이렇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교만이 아니라, 인간이 존속할 수 있겠는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가 사라질지 말지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있는데, 불교에 몸담고 있는 스님이나 한국불교가 이 시대에 뭔가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라 시대 이후 지금까지 이 나라의 땅과 정신을 수천 년 지켜온 데는 불교의 힘이 컸다고 본다.

지금 한국사회는 마치 인간들은 다 증발해버리고 아파트에 당첨을 기다리는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전 국토에 이렇게 많이 짓고 때려부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옆집 동네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우리 동네에 임대아파트 웬 말이냐’ 프랭카드 내걸고 펄펄 뛰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나라,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고 있던 집을 때려부수는 것을 경축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집을 조금이라도 한 평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때려부수는 것을 경축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또 한 가지는 수덕사 대웅전 앞에서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하는데, 여자아이가 남자 아이에게 ‘이게 무슨 집이냐’하고 물으니 ‘나도 모르겠다. 사진이나 찍자’ 하고 사진만 찍고 내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총체적인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법도와 원칙이 사라진 것이 지금 전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 이 순간이 대한민국을 다 구원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나라에 가장 걸맞는, 그러면서 우리 나라의 이런 총체적 난맥상을 치유할 수도 있는 사찰불사기본지침으로 <실상사 선언>이라는 것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정부에서 지시로 내려오는 지침이 아니라 스님들과 불자들과 전문가들이 협력해서 그러한 것을 만들고 우리 사회에도 정부에도 그렇게 요구했으면 하는 것이다.

제가 아까 수덕사 이야기를 했지만, 7-8년 전인가 수덕사 가고 나서 절대로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던 이유가 절의 가람배치는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중국과 다른 나라들에서는 할 수 없었던, 자연과 터에 대한 절절한 가치체계에서 만들었다고 보는데, 그게 깨졌기 때문이다.

제가 생각한 것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보겠다.

1) 이상해 선생님 발제문에도 나오듯이 우리나라 현재 사찰불사를 보면, 우리 나라 전통 가람배치와 건축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 중에서도 ‘비어 있는 것’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특히 빈터는 단순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채워진 것을 있게 하는’ 적극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음악에서도 침묵이 없으면 음악이 형성되지 않듯이 가람 배치와 우리 나라 전통사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채워진 것이 아니라 채워진 것들 사이의 빈 것, 그것이 없이는 채워질 수가 없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런 기본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 합의가 전제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눈으로 사찰을 보느냐 하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 건축가들의 전문적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람을 배치해온 조상들의 정신이 거기에 깃들어 있는 것이죠.
바로 그러한 가치에 반한, 동의하지 않은, 부조화를 이룬 수많은 사찰 불사들의 문제들을 통렬히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복구해야 하고 철거해야 하고 그런 일도 자발적으로 있어야 한다.

2) 두 번째로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위해 불사들을 하는데, 그것을 어떤 스님이나 집단이 독점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불사들을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가 하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3) 세 번째는 새로운 불사의 시범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 하지 않는 한 아무도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몇 년 전에 해인사에서 신행문화도량의 불사가 있었다가 중단된 적이 있는데, 그때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 중요한 계기였는데 아쉬웠다. 해인사가 하든, 실상사가 하든, 어떤 사찰이 하든 새로운 불사의 시범 사례를 보여주셔야 한다.
아까 이상해 선생님이 발제 마지막에 일본사찰의 사례를 슬라이드로 보여주셨는데, 왜 사찰과 관련된 것은 꼭 목조건축이어야 하는가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사실 사찰건축이 목조건축인 것은 법에도 없고 관례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시대에 맞는 지혜와 능력을 모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실상사 선언이라는 것이 생겨나서 전국의 절집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깨어나게 했으면 한다. 제가 불교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창조신화를 갖고 있지 않는, 이 시대에 가장 걸맞는 정신을 가진 것이 불교가 아닌가, 생각한다. 불교가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는 견성성불이 아니라 순환하고 반복하고 윤회하고 그런 쪽으로 건축이든 철학이든 인생을 그런 쪽으로 이끌어가는 큰 길잡이가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불교의 시대적 역할은 절집의 불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상해
아주 편하게 말씀드리면 절에서 불사를 하시는 스님이 ‘좋은 절 짓고 싶다’고 결심하면 좋은 절 지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좋은 절을 지을 수 있는 건축가를 찾아야 하는데, 속가의 사촌이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 데리고 막연한 감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본다.

조성룡
옛전에 집들은 누가 설계하고 누가 지었는가를 보면, 절집은 다 스님들이 지었고, 양반집은 다 선비들이 지었다. 겉으로는 목수가 짓지만, 그 목수는 스님이나 선비가 생각했던 것, 즉 어떤 터를 잡고 어떤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결국 다 스님이나 선비의 지혜와 학식과 양식으로 지어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 공부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다른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도법
저는 구체적인 공간불사에 대해서는 별 안목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말씀드리지는 못하겠고, 다만 나타난 몇 가지 현상들, 절에 살면서 나타나는 그런 현상들에 대해서 말씀드려볼까 싶다.
사찰이 현대에 와서 현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본다면 농막이 사라진 것이라고 본다. 산중도량은 농사를 짓고 살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삶 자체가 자급자족 체제였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스님일 수도 있고 지역사람일 수도 있고)에 의해서 기와도 굽고 농사도 짓고 옹기도 굽고 하면서 지역사회가 구성되었다고 본다. 그중 농사부분을 전담하는 곳이 농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현재 산중도량에 농막이 있는 곳이 없다. 이런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생각해보니 사찰이 그 지역에 있어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단순하게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닌 것 같다.

또 하나는, 제가 출가한 금산사에 대한 기록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던 두 가지가 있다.
금산사 전성기 기록을 보면 ‘5천승도가 주석했다’ 하는 기록들이 나온다. 대부분 사찰들에도 3천승도, 1천승도가 주석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그런데 현재 실상사가 위치하는 이 산내면의 인구가 2천 3백 명이다. 그러면 금산사 기록에 나오는 5천명이라는 숫자는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까. 그게 다 승려였을까.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금산사가 대단히 큰 사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5천 명이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5천 명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금산사가 그 자리에 들어설 당시 그 지역이 번창한 사회는 아니었을 것 같고, 오히려 금산사가 들어서고 그런 사회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금산사 주변에 나타났던 최근의 현상들을 봐도 그런 것 같다. 증산교, 원불교, 용화교라든가 우리가 말하는 신흥종교가 새롭게 형성되어질 시기에 금산사 미륵부처님을 매개로 거기에 사람들이 모이고 지역사회가 웅성웅성 활기를 띄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금산사 미륵부처님을 매개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최근의 현상들이 산중도량을 애초에 만들고 산중도량의 역할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아닐까 싶다.
실상사도 역시 이것도 1천여 년 전에 지금과 같은 사회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실상사가 들어오면서 한 사회가 형성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실상사가 들어서면서 머리 깍은 수행자도 있고 재가자도 있다고 했을 때, 그들은 무엇을 희망했겠는가. 실상사라는 장(場)을 통해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바램들이 모여서 지역사회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의 실상사도 애초에 사찰이 들어서고 지역사회가 만들어지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러한 이야기들을 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찰불사를 말하면 주로 수행자들을 위한 수행공간, 신자들을 위한 신행공간,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들이 중요하게 이야기되곤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저는 이제 불사를 이야기할 때 애초에 사찰이 그 지역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새로운 삶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모여오게 하고, 새로운 터전을 삼아서 그 지역에 살게 했던 그런 점을 중심에 두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현대적으로 볼 때 농촌은 아주 공동화되어 있다. 농촌사회는 거의 회생불능이다. 지역농촌사회를 실상사가 다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실상사가 들어서면서 그런 역할들을 잃지 않았더라면 지리산 산내면 정도는 이렇게까지 공동화되어 버리지는 않았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지금 이 주제에 딱 들어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해봤다.


현응
사회자를 비롯해서 오늘 발표와 토론을 해주신 세 분은 우리 전통문화와 관련해서, 오늘 우리 나라 건축과 관련된 분야에서 국가적으로 큰 역할을 하시고, 해인사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신데, 오늘 이 자리에서 뵙게 되어 참 반가웠다.
오늘 이상해 선생님의 발제와 토론자들의 말씀에 크게 공감한다. 그런 내용들이 현실화되고 구체적인 제도로서, 관행으로서, 각자 의식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논의와 합의 과정들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 이야기 나누고 있는 절불사는 도시보다는 전통사찰을 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이상해 교수님이 몇 가지 전통사찰에 대한 지침을 만들자고 했는데 전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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