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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미마 사례발표1 직지사사례 흥선(직지사 성보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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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18 09:56 조회2,6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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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 절 불사, 어떻게 하면 좋을까 1

직지사 사례
흥선(직지사 성보박물관장)


오전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차원 높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제가 형이상에서 놀던 것을 형이하로 끌어내려야 하는 역할을 맡은 것 같다. 사례발표도 금강스님과 좀 대조적인데, 미황사는 아름다울 미자가 들어 있으니 좋은 선례가 되는 이야기를 하실 것으로 충분히 예상이 되는데, 저는 그 반대가 되는 것 같아서 악역을 맡아서 해야 하는 것 같은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제가 말씀드릴 것은 직지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한다면, 오늘날 한국불교의 사찰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문제라고 감히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유감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이야기가 우리 현실이고, 여기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새롭게 모색하는 자리니까 반면교사, 타산지석이란 말처럼 그나마 기여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직지사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절이다. 신라 눌지왕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까 통도사와 같이 역사가 오래된 절보다 더 올라간다고 하기조차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런 종류의 불사가 이루어진 것은 1967년부터 시작된다. 1997년에 30년 중창불사 회향을 했다. 그리고 나서도 지금도 끝이 난 것은 아니고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니 지금까지 4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근현대 들어서 우리 불교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본적인 것이다. 그 안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불사의 결과로 60년대 중반에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80동 가까운 건물이 있다. 어마어마하게 범위가 넓어지고 건물들도 커졌다. 제가 70년대 전반부터 이미 35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가까이서 봐왔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으리라고 본다.

먼저 직지사 불사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중창불사였다. 즉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 그 목표의 지점은 어디인가. 직지사 사적기에 의하면 한참 전성기라고 이야기되는 때, 암자가 서른 몇 군데가 되었다던 때이다.

불사의 목표에 내재한 문제점

이렇게 목표를 갖고 불사를 하면 문제는 없을까. 제 생각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목표설정에 있어서 대중적 합의나 불사에 대한 비전을 그릴 수 없었다.
목표설정을 함에 있어서 대중적 합의나 불사에 대한 비전을 그려가는 단계가 생략되어 버리고, 이 중창불사를 시작한 한 분의 발원, 그 분이 가진 개인적 소망으로 결정되어 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40여년 이상의 세월을 모든 사람은 거기에 따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만인의 동의 하에 출발하지 않는다면 목표 설정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둘째, 변화된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조선시대 17세기, 18세기의 절 모습을 오늘 날 이 시대에 다시 구현한다고 할 때,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가 없다.
셋째, 고증의 문제이다.
기록에는 건물이 무엇이 있었고, 몇 칸 있었다는 것까지만 나온다.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위치는 어디였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고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로 옛 이름을 가진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사실 그것은 복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사에 특징적인 현상들

지금까지 40년 동안 지속되어온 불사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 현상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첫째, 대형화되고 있다.
과거에 그렇게 큰 건물이 없었는데 정말 커지고 있다. 지금 현재는 건물 한 채가 500평 되는 건물도 있다.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다. 건물이 커지면 갖는 문제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 대웅전 앞의 황학루라는 누각이 있었다. 2층 누각인데 작고 오붓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크게 짓고 싶으니 천불전 앞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누각을 지었다. 그러고 나니 본래 누각보다 몇 배 커졌다. 그런데 아까 이상해 교수님이나 정기용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 건물은 집합이다. 그 건물이 워낙 커져서 대웅전 앞을 막아버리니 대웅전이 왜소화되었다. 그래서 대웅전이 갖고 있던 품격과 위의를 깎아내리고 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대형화를 지향해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등질화 ․ 몰개성화되고 있다.
한 마디로 특징이 없다. 예전에는 같은 사찰이라고 해도 경상도 사찰과 전라도 사찰이 달랐다. 경상도 쪽이 구조를 중시한다면, 전라도 쪽은 의장과 공예적인 특징이 많이 있었다. 평지가람과 산지가람의 차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차이들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 좋은 것을 모방해서 짓기 때문에 지방적 특색이나 그 사찰이 가지고 있는 전통, 역사와 같은 것들이 다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반성적 사고 없이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당연히 환경문제, 불교적 생활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문제, 아류를 많이 만들어내는 문제, 역효과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류의 예를 들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건물은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하고 있는데, 전라도 월출산에 있는 무위사 극락보전 법당을 모방해서 지은 것이다. 무위사에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 또 비슷하게 지어놨으니 아류밖에 안 된다.
역효과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예를 들어 절이 자꾸 넓어지니 처음에 있던 사역이 차츰 넓어지고 계곡 쪽으로 점점 가까이 가게 된다. 그러니 수해의 염려가 생긴다. 그러면 축대를 쌓게 되니 계곡이 직선화된다. 아래는 또 물난리를 겪게 되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절은 해마다 이것을 되풀이해서 준설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위에서 토사가 내려와서 다리 밑을 또 메꾸어 버리니 해마다 수천만 원씩 들여서 준설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이 경제적 부담이 감당 안 될 정도로 커지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넷째, 대개의 불사들이 불사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1인이다.
직지사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다른 절도 마찬가지다. 계획에서 모든 것들이 그 사람 주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애초에 마스터플랜이라는 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중의 여론이나 공의는 반영할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다섯째, 과거 전통의 겉모습만 일방적으로 모방하고 답습한다.
아까 이상해 교수님께서 박물관 이야기를 하면서 신랄하게 비판을 해주셨는데, 100% 공감하는 이야기다. 직지사가 대표적이다. 직지사 박물관은 69년도에 완공한 건물로 목조건축인데 20세기 건축양식 가운데 보존가치가 있는 건물이었다. 건축자재도 춘양목이라든가 우리 옛날 나무들을 사용한 건물인데, 박물관을 해야겠다면서 그것을 다 개조했다. 목조건축의 골격과 뼈대를 남겨두고 내부를 개조하는데, 이게 사실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저는 박물관장의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엄청난 양의 유물을 놓고 잠을 못 잔다. 겉모습은 옛날식으로 고집하고, 내부에는 박물관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안 되어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하면 철학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 종교건축, 불교건축이라고 하면 불교사상 속에서 그러한 건축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없다. 아까 ‘건축은 집합이다’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라고 본다. 불교적으로는 연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기적인 고리를 다 끊어놓은 것이 지금까지의 불사다.
사원건축은 무엇인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부분인데, 거기에 살고 있는 수행자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 즉 수행공동체라는 개념이 없으니 많은 모순이 생겨난다.
공동체 생활이 안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큰 방 같은 곳이 있어서 구심점을 이루고 함께 생활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방들을 다 흩어놔 버리니 다 개인살림을 하게 된다. 방에는 TV, 냉장고, 화장실 등이 다 들어간다.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러한 것들은 한 곳에 효과적으로 모아 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결국 자기 방에서 나올 필요가 없어진다. 대중들과 대화해야 할 이유도 없고 서로 절차탁마해 가면서 수행하는 풍토도 생겨나지 않게 되어 있다. 건축이 이런 것들을 보완하고 보조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서로 그러한 것들을 깨뜨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바로 종교건축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천착이 없이 건축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여섯째, 전통의 계승과 발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건축양식의 변화에 관한 것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지식만 쌓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안 되니 일방적인 모방으로 귀결되고 마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직지사에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이루어진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한다. 그럼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좀더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짚어보겠다.

첫째, 수행관의 변화이다.
수행공동체로서의 의식이 퇴조하고 전부 개인화하고 파편화하고
객스님들이 직지사에 오면 ‘여기는 절 같지 않고 공원 같다’,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들뜨게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것들을 만드는 것이 건축일 텐데 그게 안 되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스님들이 차분한 마음으로 수행에 매진하도록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둘째, 유기적 공간의 훼손이다.
직지사의 경우 대웅전 앞에 요사채 역할을 하는 곳이 있었다. 대웅전 앞에 학인들이 쓰는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부러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예전 같으면 바로 옆에 법당이 있으니까 바로 아침에 싫더라도 대웅전에 올라가서 예불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옛날 같으면 두 번 갈 것을 한 번 가고, 한 번 갈 것을 안 가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스님들의 수행생활을 건축이 전혀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셋째, 유지관리에 많은 비용이 든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 직지사 일년 예산이 18억 정도 된다. 전국에 알려진 명성하고는 달리 말도 안 되는 예산인데, 그 중에서 한 달 인건비가 6천, 일년 7억 2천 정도이다.
난방비가 1,000만원 이상이니 그것도 유류로 감당이 안 되어서 나무 겸용 보일러로 바꾼 상태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직지사에는 80동의 건물이 있다. 요즘 기와 수명은 20년 정도로 보면 된다. 적어도 한 해에 4동 정도 번와를 해야 현상 유지가 된다. 집은 또 오죽 커졌는가. 기와 하나만 번와한다고 해도 일 년에 몇 억씩 있어야 한다. 다른 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그것이 불사라는 이름으로 낭비가 되고 있다.

넷째, 전문가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상의한다는 것이 풍수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정도를 물어보는 게 전부이다. 여기 오신, 이런 전문가들을 모셔서 한 번도 자문을 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설령 자문을 구한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안 하면 그냥 무시해 버린다.
그런 예가 하나 있다.
어떤 주지스님이 유명 인사들을 모셔서 자문을 구했다. 그 주지스님은 70평 정도로 지으려고 했는데 전문가들이 오셔서 돌아보고 “그렇게 크게 지으면 안 됩니다” 그랬더니 점심도 안 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게 우리들의 현실이다.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거기에는 예술가도 포함될 것이다. 요즘에는 예술가가 아니라 장인들이 동원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수주를 한다. 노동력을 중국에서 빌어서 만들어 온다. 이게 현재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사의 구조다.
불화같은 것은 더 하다. 건설회사가 요즘 아파트 짓듯이 하청에 재하청으로 한다. 굉장히 심각하다.
이런 방식으로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불사하면서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면 이러한 관행을 답습하면 안 된다.
지금 직지사에 가면 판박이로 만든 것들이 한 법당에 4구가 함께 있다.
거기에 예술가가 동원되었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이러한 것은 이 시대의 미감과 이 시대의 역사의식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절 스스로의 힘으로, 주체적으로 불사를 하려는 힘이 약화되어 있는 것 같다.
직지사가 처음 불사할 때는 밥장사를 하고 신도들에게 보시를 받아서 불사 기금을 마련했다. 저는 그때가 참 고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점점 우리 경제력이 커지고 그러면서 그런 방식들이 외면되고, 이제는 정부에 손 벌리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도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배제되고, 당연히 신도들도 배제되어 있다. 정착 불사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다 빠져버리는 것이다.

현응스님 말씀에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전제는 있다.
그 전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정부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불사를 할 돈이 필요하면 스님들이 신도들 상대로 법회를 했고, 스님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했다.
그런데 정부 돈이 들어오면서 점차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주지스님이 몇 분이 해버리고 다른 스님들은 노력을 안 한다.
이런 것들이 불교를 타락시키는 구조 중의 하나이다.
불사를 하면서 정작 신도들은 배제시키고 수행자도 세속화시켰다.
우리 스스로 부패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우리 스스로 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국가의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우리들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에서도 그러한 식으로 뭔가 따내려고 하면 그냥 안 준다. 어떤 경우에는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인데도 그냥 안 한다.
제가 지금 직지사 성보박물관을 하고 있어서 잘 안다.
지금 유물이 600점 정도 되는데 지금 2천 점이 넘었다. 수장 공간이 없어서 수장고를 만들어야 하는데, 결국은 안 되었다.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무원들한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가 다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로비를 하기도 하고, 종교와 정치가 유착되는 이런 상황들이 생겨난다. 알게 모르게 스님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상황도 생겨나고.
이런 상황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불사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날 거의 다 그렇다고 봐야 한다.
건물이 필요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지어놓고 그곳에 필요를 맞춘다. 
당장 요즘 새로 절에 들어오는 행자들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특히 비구니 스님들은 요 몇 년 사이에 팍팍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절은 이전에 비해 얼마나 커지고 있는가.

또 하나는 장비의 현대화에 따른 문제이다.
요즘 중장비들이 굉장히 좋다. 별별 일이 다 생겨난다.
직지사에 있으면 일년 중에 중장비 소리 안 듣는 날이 두 달이 안 될 것이다. 중장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덤프트럭, 포크레인, 대패질….
그 소리들이 얼마나 사람 힘들게 하나.
그 안에서 수행이 가능할까. 저는 잘 안 되더라.
또 한 예로 실상사의 본사이기도 한 금산사 말사 중에 화암사라는 절이 있다. 제가 이전에 매우 사랑하는 절이었는데 요즘은 사랑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는다.
거기는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고 좁은 계곡 밖에 없는데
계곡이 다 바위이다. 계곡 자체가 진입로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제 생각에 요즘 스님들이 아무리 무지막지 하다 해도 이것만은 손 못대겠지, 했다. 그런데 거기에 길을 낼 수가 없으니 산 하나를 완전히 우회해서 다닌다. 거기에 폭포가 있는데, 그 암반의 낮은 부분으로 유상곡수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위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놓아버렸다. 이제는 하수구 노깡이 입을 벌리고 있다.

직지사는 40년간 불사 체제였다. 그러니까 거기서 수행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1인당 사용하는 공간이 엄청 넓다.
이런 것들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수행하고 연결되는 부분이다.

개인이 갖는 취향이 불사에 너무 크게 반영되고 있다.
직지사에는 맞배지붕 건물이 없다. 예전에 있던 건물 몇 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팔작지붕이다. 불사를 주도하신 분이 맞배지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 조경에도 마찬가지이다. 직지사에는 영산홍이 많은데 그것도 그 분의 취향이 그래서 그렇다.
영산홍이 있으면 무슨 문제들이 있는가. 영산홍이 갖고 있는 꽃색깔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소리지르는 꺄약~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영산홍이 있는 색깔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서 그렇다. 만약 거기에 매화가 있었으면 그랬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 다음에는 담당자의 부패이다.
아까 말씀드린 우리 나라 불사의 구조에서는 모든 게 돈놀음이고 부패와 연결된다. 직지사에서도 재무를 사셨던 분들의 말로가 다 비정상적이었다.
한 분은 서울역 같은데서 옮겨다니면서 살고, 한분은 나가서 음식점 하시다가 안 되고. 한분은 일찍 돌아가시고…

오늘날 많은 절들이 왜 불사를 하는가. 냉정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 해야 한다.

예산 이상의 것을 만들어서 사유화하거나 예산 중 일부를 사유화 하려는 동기가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면 1억짜리 대웅전을 짓는다고 하면 2억, 3억짜리로 계획을 만든다. 잉여를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불사를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절에서 주지 임기가 다 되어 가면 불사를 벌인다. 불사를 완료해야 하니까 임기를 더해야 한다고 한다.

그 다음에 사적인 공간의 확보이다.
오늘날 사설암자라는 게 그게 다 동기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예산 전용의 문제이다.
불사한다고 하고 거기에 조금 쓰고 다른 곳에 쓰는 것이다.
국가예산의 경우도 그렇다. 국가예산은 엄연히 전용이 안 되게 되어 있는데도 2억을 받았다면… 불사의 목적과 동기가 이렇게 순수하지 않고 다른 데 전용하는 그런 현장들을 많이 목격했다.

한편으로, 불사가 이렇게 대형화되는데 심리적인 동기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두 가지 정도가 생각이 나는데,
첫째는 스님들이 집단적으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것이고 우리 것의 정체를 찾지 못한 것이다.
자기 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종교, 다른 나라의 거대한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생긴 열등감이 있는 것 같다.
둘째는 경쟁심이다. 어느 절에서는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해,하는 심리이다. 박물관 같은 경우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필요성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서 결국 운영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불사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통제와 감시 체제의 구축이다.
불사의 필요성부터 불사를 하기까지 불사의 전과정을 검토하고 위원회라든지 하는 것이 꾸려져서 불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다음에 단위사찰이 아니라 교구에서, 또는 종단에서 각급의 불사를 통제해야 한다.

둘째,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조언을 받으려고 해도 그 자질이 없으면 조언을 받을 수도 없다.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국가기관에 위탁을 해서 위탁교육을 시킨다든지 해서 하고, 더 장기적으로는 교육을 한다고 하면 이런 난맥상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불사 이야기를 하려면 끝도 없이 할 수도 있는데, 시간도 그렇고 해서 메모로 대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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