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화엄경세주묘엄품과...5강 요약문(2011.07.10)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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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법문] 화엄경세주묘엄품과...5강 요약문(201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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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1-08-10 19:27 조회4,0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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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실상사 공동기획 / 오늘, 지금, 여기서 설해지는 경전 
• 도법스님의 ‘화엄경 세주묘엄품’과 실상사 산내마을 법계공동체 ⑤
 

 

"불교수행의 희망은 대비원력의 신심에서 나온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한 청법의식에 대해 한 가지 말씀 드리는 것으로 법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전체대중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청법가를 한 다음 또 다시 큰 절을 세 번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뭔가 무겁고 어수선하죠. 깔끔하고 경쾌한 맛이 없는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청법가만 해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아니 오히려 깔끔하고 더 좋죠.

현대 사회는 매우 경쾌하게 굴러갑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예전부터 해온 것이라고 이것저것 다 하면 의식이 무겁고 칙칙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의식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예전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걷어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밝고 경쾌한 맛이 있어야 일반시민과 젊은이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할 마음이 나죠. 불교의식이 지나치게 고목모습과 고목냄새로 풍기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근에 빗물박사에 대해 쓴 책을 읽었습니다. 국제적으로 학술논문상도 받은 내용이므로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핵심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물중에 최고 좋고 깨끗한 물은 빗물이다. 빗물은 하느님이 준 선물이다’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빗물’하면 산성비를 떠올리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그것은 괴담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우리나라 물문제는 물에 대한 잘못된 상식에 근거하여 정책을 세우기 때문이지 실제 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연구내용대로 빗물이 최고라는 관점에서 빗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하면, 굳이 대형댐을 만들지 않아도 가뭄과 홍수를 예방함과 동시에 삶에 필요한 물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빗물의 실상에 눈뜨고 빗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 물문제에 대한 최선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 불교 사유방식으로 본 현실문제
 
얼마 전 국토해양부 사람들이 찾아와서 홍수조절을 위해 지리산댐이 필요하다며 실상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요 성산이다. 당연히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리산과 지역을 성산답게 잘 가꾸어서 21세기 한국인들에게 생명평화의 고향이 되도록 하는 차원에서 댐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켜 본 바에 의하면 지리산을 잘 가꾸어 대안적 희망을 만들어가기는커녕 지리산이라는 하나의 생체를 놓고 이쪽저쪽에서 한 다리씩 뜯어다가 자기필요대로 쓰겠다는 식이니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떤 일도 정부가 하는 일은 반드시 국론이 통합되고 국민이 화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시간이 더 걸리고 돈이 좀 더 들어간다 하더라도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관계된 지역과 사람들이 충분하게 논의하여 함께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정부가 하는 일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정부가 나서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화합을 저해하는 꼴이니 대단히 심각한 일일뿐 아니라 선뜻 긍정적으로 함께 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빗물과 지리산 댐에 대하여 말씀드린 것은 ‘불교가 무엇인가’, ‘불교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앞의 빗물은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불교적 예이고, 뒤의 지리산 댐은 불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교적 예입니다.
 
살펴본 바에 의하면 빗물의 본래면목인 그 가치에 눈을 뜨고 보니 불교의 ‘사유방식’, 물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과 길(불교의 해결책)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대형댐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싸우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서로 머리를 마주하고 앉아서 빗물을 잘 관리하고 화용하여 물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결론입니다.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애정을 갖고 협력하는 방식이죠.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일을 통해 국론이 통합되고 국민이 화합하게 되죠. 자연스럽게 국력과 국가수준도 향상하게 될 것입니다.
 
빗물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불교라면, 빗물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물문제에 대한 해답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교적 실천인 것입니다. 불교를 한다고 하면서 현실문제와 거리를 둔다거나 불교와는 무관하게 현실문제에만 골몰한다면 모두 다 불교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죠.
 
 
◆ 대비원력의 신심, 수행의 출발이자 마지막
 
이제 경전공부를 하겠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불교의 사유방식으로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방7금 전에 한 것이 경전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겠죠.
지난 법회에서는 화엄법회의 기본조건으로 기세간(器世間)의 가치와 참여를 황금땅으로 드러냈고 다음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의 가치와 참여를 존재가치를 발견한 붓다로 드러냈습니다. 오늘은 유정세간((有情世間)의 가치와 참여를 법성신(法性身, 법의 정신에 일치하는 대비원력의 신심)을 얻은 보살을 드러낼 차례입니다.
 
경문을 읽겠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열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같은 보살마하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보현(普賢)보살마하살·보덕최승등광조(普德最勝燈光照)보살마하살·보광사자당(普光師子幢)보살마하살·보보염묘광(普寶焰妙光)보살마하살·보음공덕해당(普音功德海幢)보살마하살·보지광조여래경(普智光照如來境)보살마하살·보보계화당(普寶髻華幢)보살마하살·보각열의성(普覺悅意聲)보살마하살·보청정무진복광(普淸淨無盡福光)보살마하살·보광명상(普光明相)보살마하살들이었다.”
 
 
경전내용으로 보면, 무수한 보살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열 분 이름만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열 분 보살은 불교수행의 기본터전인 신심(信心) 즉 십신(十信)을 상징합니다.

전통적으로 화엄의 수행체계를 의해기행 기행절해(依解起行 起行絶解, 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의지하여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면 부질없는 분별심의 자취가 끊어진다)라고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신(信, 믿음), 해(解, 앎), 행(行, 실천), 증(證, 체득)의 넷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지금은 넷 중의 처음인 십신(十信, 믿음의 확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해행증의 순서로 보면 십신은 불교수행의 처음이요 근간이요 제일 낮은 맨바닥입니다.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왜 맨 바닥인 십신을 나타내는데, 참여대중 가운데 제일 높은 경지에 도달한 인물인 십보(十普)보살들을 내세웠을까. 건물에 비유하면 십신은 건물터를 잘 갖추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건물을 지을 때에 가장 기본적으로 튼튼하게 잘해야 할 일이 터를 다지는 일입니다.
 
자타가 함께 성불하는 집을 짓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다져진 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의 형태를 잘 유지해주듯이 믿음의 확립도 불교수행의 집을 짓는데 처음과 과정과 결과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건물의 터처럼 대비원력의 신심을 확립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른 신심의 확립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법성신을 얻어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 즉 정법의 정신에 입각한 대비원력의 신심이 확고하게 확립된 십보보살들, 그리고 모든 지위에 다 통하는 십보보살들을 등장시켜 십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십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한두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대비원력의 신심을 확립하는 것은 농부가 좋은 밭을 만들고 좋은 씨를 심는 격입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털끝만큼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길가는 사람이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방향을 바르게 잡고 첫걸음을 내디딜 경우 본인이 방향을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는 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합니다.
 
분명한 것은 바른 신심이 확립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경전에서는 신심이 확립되면 부처가 있다 없다, 불교가 좋다 나쁘다, 윤회가 있다 없다, 깨달을 수 있다 없다, 수행이 된다 안 된다 등 어떤 문제에 직면해도 신심이 확고부동하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대비원력(大悲願力)의 신심을 확립하는 것이 한국불교 수행자들의 오늘과 미래를 희망차게 하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불교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행자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합니다. 출가수행자들이 한국불교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모든 책임도 출가자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의 원인들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하지만 문제의 핵심 한 가지를 든다면 그것은 법의 정신에 근거한 대비원력의 신심을 확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비원력의 신심을 근본으로 하지 않을 경우 불교수행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방향과 길을 잃게 마련입니다. 지금이라도 불교를 만나는 출가재가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신심을 확립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불교의 희망, 수행자의 희망을 꽃피우려면 다른 길이 있지 않음을 살폈으면 합니다.
 
*** 불교신문 2741호/ 8월10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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