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봉안법문] 본래부처라는 확신과 자부심으로 삽시다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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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복장봉안법문] 본래부처라는 확신과 자부심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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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3-12-13 08:33 조회4,4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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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8 약사전 약사여래불 복장 봉안법회
 
'본래부처'라는 확신과 자부심으로 삽시다 
 
 
 도법스님 (실상사 회주)
 
 
■ 반갑고 고맙습니다.
 
오늘 이 법회는 약사여래부처님 복장봉안을 위해 우리들이 다 같이 좋은 원들을 세우고 함께 해서 마련된 자리입니다. 약사여래불 복장불사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부처님을 탄생시키고 완성시켜가는 불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나면 어떻다고 합니까? 경전에는 부처님이 태어나면 온 우주가 다 감동해서 춤을 추고 한 사람 한 사람 바람들이 성취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삼라만상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봉사는 눈을 뜨고, 앉은뱅이는 일어나서 걷고, 벙어리를 말을 하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거죠.
 
실상사 약사여래부처님은 1천여 년 전에 조성된 부처님입니다. 당시 얼마나 정성스럽게 모셨겠습니까. 그런데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많이 낡고 부서지고 훼손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1천여 년 전 이 부처님을 모셨던 분들의 사상과 정신, 그때 살았던 분들의 발원과 원력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 발원과 원력으로 새롭게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완성시켜가는 그 중간 단계가 오늘 이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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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 대의왕이신 약사여래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을 ‘삼계 대의왕(三界 大醫王)이라고 말합니다. 온 세상의 모든 병을 잘 치유해내는 가장 위대한 의사, 의사중의 의사라는 것입니다. 의사가 필요한 것,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고통과 불행이 계속 발생한다는 것은 병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환자라는 거죠. 병환을 치유하지 않은 채 살아가기 때문에 고통과 불행이 계속 발생하는 것입니다. 환자들이기 때문에 병든 환자의 행위를 하게 되고 병든 환자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계속 고통스럽고 불행한 거죠.
 
요즘 우리 사회가 매우 불안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 대립과 갈등의 원인을 잘 보면 무지와 착각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병과 착각병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병입니다.
 
우리 민족은 좌우대립, 동족상잔이라는 큰 사건을 겪었습니다. 좌우가 대립하고 동족이, 이웃이, 심지어 형과 아우가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차마 벌어져서는 안 될 일들이 우리 민족사에서 벌어진 거지요. 그 경험이 너무 강렬하기에 그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지 못한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기에 비슷한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우리 사회는 금방 비정상적으로 흔들거리고 불안에 빠져 버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용어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게 빨갱이, 좌익, 요즘에는 종북이라는 말도 언론에서 계속 나오고 있지요. 빨갱이, 좌익, 종북 - 이런 말들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표현입니다. 이 표현들은 단순히 어떤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죠. 우리 현대사에서 이렇게 불리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 막말로 하면 제거해야 될 대상, 죽여야 될 대상이라는 것이었죠.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었겠습니까.
 
적어도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이런 표현들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되겠죠. 그런데 마구 써제끼고 있죠. 정치도, 언론도, 사회도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고 사회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죠. 이것도 다 따지고 보면 무지와 착각병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약사여래는 바로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위신력도 갖고 있지만 이런 무지와 착각의 병을 치유하는 의사중의 의사, 대의왕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오늘 이 자리는 우리가 바로 그런 부처님을 완성시켜가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런 불사를 통해서 우리들 각각의 무지와 착각의 병도,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무지와 착각의 병도 다 치유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이웃으로, 좋은 동반자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일이 부처님을 탄생시키는 일, 부처님을 완성시키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여러분께서 하시고 계신 일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복장불사’라고 하는데, 여기서 ‘복’은 ‘배 복(腹) 자’거든요. 어떻습니까. 살다 보면 ‘뱃속 편하게 살자’는 말 자주 듣지요? 또 자주 하기도 하고요. 왜 그런 말을 할까요? 실제로 뱃속이 편안해야 사는 게 편안해지니까 그렇죠.
그러면 사는 게 편안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뱃속에 필요한 것들이 잘 갖춰져야 되고 잘 담겨야겠죠? 그래야 뱃속이 편안해지고 뱃속이 편안해야 사는 게 평화로워지는 거거든요.
 
복장불사도 같은 이치입니다. 부처님 뱃속을 정상적으로 완성시켜가는 작업이 복장불사인 것이죠. 부처님 배안에 화엄경도 모시고 법화경도 모시고 금강경도 들어가고 다양한 경전들이 들어갑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사경하셨죠? (네!) 우리 불자님들이 선한 신심과 발심과 원력으로 정성스럽게 사경한 경도 다 부처님 복장에 모셔졌습니다. 바로 이런 내용들이 단순히 철로 만든 등상불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담는 부처님으로 탄생하게 하고 부처님으로 완성시켜가는 거죠.
 
■ 부처님을 탄생시키고 완성시켜가는 공덕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그래서 오늘 우리는 가장 거룩한 일,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장 위대한 일을 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어떠세요? 그런 확신이 있으십니까? (네!) 그런 확신이 있어야 우리 불자님들이 했던 행위 하나하나가 공덕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런 확신과 함께 이런 일을 해냈다고 하는 자부심도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야기시키는 무지와 착각의 병을 치유시키는 의사중의 의사인 약사여래부처님을 완성시키는 일을 누가 했습니까. 바로 우리들이 한 거죠. 아주 대단한 거죠.

이렇게 해서 약사여래부처님을 완성시켜 모셔놓으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복장불사에 동참한 우리 불자님들의 발심과 신심과 원력의 기운을 받게 되는 거죠. 그런 영향을 받아서 그분들도 우리들처럼 선한 신심과 발심과 원력으로 삶을 살아가고 이 세상을 낫게 만들어가는 데 역할을 하기도 하겠죠.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선한 신심과 발심과 원력으로 이루어낸 복장불사가 우리 모두를 더 나은 삶을 꽃피워내는 노력으로서 효과를 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또는 실상사와 불교를 위해서, 나아가 우리 사회를 위해서 신심과 발심과 원력으로 실제 공을 들이고 실천하신 우리 사부대중 여러분들이 정말 훌륭하시다는 생각도 들고 고맙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이 했던 일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서로 격려도 하고 우리의 신심과 발심과 원력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서 온 세상을 가득 채우도록 하겠다는 바람으로 우리 함께 큰 박수를 치도록 합시다.(우렁찬 박수들)
 
 
세상의 이치 1, 연기緣起. 무아無我. 공   
 
이런 훌륭한 불사를 했으니 이제부터는 이 훌륭한 불사의 뜻을 받아서 우리가 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부처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약사여래부처님을 탄생시키고 완성시킨 것은 그 자체에만 목적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도 부처로 태어나고 부처로 살고 부처로 역할하기 위해서인 거죠. 만약 약사여래부처님만 잘 모시고 나는 부처로 태어나지 않고 부처로 역할하지 않는다면, 마치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을 어마어마하게 만지기는 하지만 자기 돈은 아닌 은행원의 삶과 같은 거죠.
 
그런 차원에서 한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 우리 마야합창단이 노래를 했는데, 그 노래 가사에도 마음을 비운다는 표현이 나오네요.
 
마음이 부처라면 마음이 부처라면
부처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나
나 없는 마음이라야 부처를 볼 수 있네
아- 나보다 이웃을 위하여
나를 버리고 나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며 마음을 비우며
사는 이가 부처라오
 
마음이 주인 되어 마음이 주인 되어
세상일을 만들고 모든 것을 시키나니
마음에 때만 없다면 세상은 밝아오네
아- 나보다 이웃을 위하여
함께 나누며 함께 나누며 
베풀며 세상을 마음을 비우며
사는 이가 부처라오
 
조금 전에 우리가 함께 읽은 반야심경에도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평화롭고 행복하다(열반에 들어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불교의 핵심인 무아(無我), 공(空), 연기(緣起)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이 세상을 이렇게 존재하게 하고 또는 운영되게 하고, 이렇게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이치를 우리 개념으로 표현하면, 무아, 공, 연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무아, 공, 연기의 정신으로 보면 소유할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는 사고를 하게 됩니다. 그것을 아까 노래에서는 나를 버린다, 마음을 비운다고 표현한 것이고, 비운다는 말은 공의 내용을 내 삶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얻을 것이 많아야, 소유한 것이 많아야, 싸움에서는 이겨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無所得故) 평화롭고 행복하다(究竟涅槃)고 하잖아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그랬다는 겁니다. 세상이치가 연기, 무아, 공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죠.
 
 
세상의 이치 2, 본래부처   
 
그런데 이런 연기, 무아, 공의 사상은 또 다른 측면에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손등과 손바닥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앞의 것과 다른 내용은 아니고, 분리시킬 수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손을 쓸 때 필요에 손바닥을 써야 될 때가 있고, 손등을 써야 될 때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측면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부처’라는 것입니다.
본래부처라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거룩한 게 있다고 말하는 거죠?
자, 여기서 잘 봅시다.
그러니까 아까 연기,무아,공사상에서 ‘비운다’, ‘얻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면, 본래부처론에 오면 더 크게 마음을 내라고 말합니다. 대승경전에서는 이렇게 더 크게 마음을 내는 것을 ‘대자대비’, 또는 ‘대자비심의 원력’, ‘대자비심의 발심’이라고 합니다. 내 이익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마음 쓰고 산다는 거죠. 이게 바로 세상이치의 또 다른 측면인 것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생각, 내 이익만 붙잡고 살겠다는 욕심을 비우라는 거예요. 그러면 평화롭고 행복해진다는 거죠. 그러면 내려놓거나 비우면 그 다음에 오는 결과를 무엇일까요? 결국 ‘우리 모두 함께’라는 게 되죠. 낮추고 비우는 것에 머물지 않고 더 크게 마음을 내고 더 크게 마음을 쓰는 것이 결국 진짜 비운다는 거죠. 대승불교에서는 이런 내용들을 본래부처론으로 설명합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법회를 했기 때문에 법회에 나오는 분들은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다 알 거예요. 그런데 오늘은 평소에 법회참석이 어려운 분들도 많이 오셨기 때문에 특별히 또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 부처님과 중생의 공통점과 차이점 
 
석가모니 부처님이 특별하고 위대하다는 것은 깨달아서 부처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렇죠. 당신이 세상 이치를 몰랐을 때는 그야말로 죄 많고 업이 많아서 문제인 중생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깨닫고 보니 본인이 중생이 아니라 부처란 사실을 확인하셨죠. 그런데 또 하나 확인한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나만 부처가 아니라 너도 부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특별함이고 위대함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불교를 제대로 하느냐 건성으로 하느냐는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연기, 무아, 공 - 이것을 잘 파악하고 잘 이해하고 자기 살림살이의 내용으로 확고하게 정립해내는 것, 이것이 불교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아닌가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다른 편으로 말하면, 존재 자체가 바로 부처라는 사실, 나아가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석가모니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누구나 다 본래부처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확신하는가 아닌가가 불교를 제대로 하는가 아닌가의 핵심입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연기, 무아, 공이라는 개념을, 대승불교에서는 본래부처라는 개념을 쓰는 겁니다. 이쪽에서는 연기무아공이라는 개념이고 이쪽에서 본래부처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실제로 부처님과 다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굶으면 배고프고, 상한 음식 먹으면 식중독 걸리고, 나이 들면 아프고… 아무것도 다른 게 없죠. 똑같아요. 부처가 된다고 해서 눈이 세 개 되는 것도 아니고, 발이 두 개인데 다섯 개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걸어 다니는데 부처님은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지요. 다른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 부처님과 우리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부처님은 세상의 이치를 알고 그 이치대로 세상을 살았고, 그렇게 사니까 사는 게 행복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만 행복한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도 행복해졌다는 거죠. 이게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자꾸 얻어야 행복하고 소유해야 행복하다고 하는데, 부처님은 풀어놓아야 행복하다고 하는 겁니다.
 
■ 한몸 한생명의 그물코 사랑
 
여기 이 그림이 보이시나요? 이 그림은 쉽게 말씀드리면 그물의 그물코를 그린 겁니다. 그물의 그물코가 전부 연결되어 있듯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의지해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재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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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먼저 볼까요? 그림의 제일 아래쪽이 지금 여기 나(인간)입니다. 오른쪽이 네 발 달린 짐승이고, 왼쪽이 날짐승과 물짐승이죠. 사람 머리 위쪽이 나무 ․ 숲 ․ 식물이고, 붉은 원형은 해, 하얀 원형은 달입니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관념에 물들기 이전의 본래 청정한 무위자연의 우주 삼라만상과 인위적 관념에 물든 이후의 인간 사회가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의 총체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음을 단순화시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생명평화무늬, 인드라망무늬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 그림으로 볼 때, 중생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그물의 그물코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의지해있다는 것을 모른 채 다른 것과는 관계없이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생입니다. 나는 나, 너는 너라고 알고 사는 거죠. 그런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배가 고프든지 말든지 나만 배부르면 된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럽든지 말든지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겠죠. 이게 중생의 소견이고 중생의 삶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그렇게 산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겠죠?
 
그러면 부처님은 어떤 존재인가.
부처님은 우리가 그물의 그물코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의지해 있어서 온 우주가 나와 한 몸 한 생명이라고 알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법성게(法性偈)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즉 티끌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티끌이 곧 우주고 우주가 곧 티끌이라는 거죠. 장일순 선생님은 이에 대한 깨달음을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이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너는 네가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니고,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니 어떻게 살아야하겠어요? 너는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할 수 있겠어요? 인간적으로도 옳지 않지요. 잘 새겨들으십시오. 다른 사람이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하면 나 혼자서는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거예요. 아예 가능하지가 않다는 말이죠.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아주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설명하면 바로 이런 겁니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라고 알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중생이라고 하고, 너와 나는 그물코와 같은 관계라고 알고 너 없이는 나도 없다고 알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나누고 살아가는 사람을 부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으로 살면 영원히 갈등과 대립, 모순과 혼란, 고통과 불행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부처로 살면 당연히 화목하고 평화로워지겠죠.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은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도, 자타불일불이(自他不一不二)도 다 이걸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이치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그물코와 같은 관계를 하고, 그렇게 살면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분이 부처님인 거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돕고 나누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화목하고 평화롭지요.
 
중생은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결국 자기 생각대로, 자기 습성대로, 자기 편한대로, 자기가 유리한 대로 살아가겠죠.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그렇게 사는 한 삶이 평화롭지 않습니다. 얼른 보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막상 살아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죽어라고 무엇을 해도 모순과 혼란, 대립과 갈등의 삶이 펼쳐집니다.
 
■ 본래부처 자기가 행하는 대로 자기 삶이 만들어진다 
 
‘본래부처’라는 개념에는 자기가 마음을 내서 행위하는 대로 자기 삶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 도둑놈으로 살 거야’ 마음 먹고 도둑질을 하면 도둑놈 인생 되는 것이고, 반대로 ‘나는 착한 사람으로 살 거야’라고 마음 먹고 부처님처럼 행동하면 그대로 부처인 겁니다. 다른 게 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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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결론을 내려보지요.
우리는 본래부처입니다. 그것을 화엄경에서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래부처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먹고 행동하는 대로 내 인생이 창조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거예요.
전생에 지은 죄가 많다, 근기가 약하다, 업이 많다 등등 온갖 말로 본래부처인 인간을 아주 우습게 만들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현재에 살고 있고, 본래부처라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내 인생이 창조되어진다는 겁니다.
 
■  현재를 잘 살면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어때요? 설령 전생에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지금 도둑질 하면 도둑놈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든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거예요. 지금 내가 좋은 뜻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그게 중요한 거예요. 도둑놈 인생이이든 부처님 인생이든 그것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는지에 따라서 만들어진다는 것, 이게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현재를 잘 살면 과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잘 살면 미래에 대한 모든 걱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미래에 대비한다고 해서 걱정이 없어집니까? 그렇지도 않은 것을 경험으로도 잘 아시잖아요.
 
■ 자리이타, 이치에 따라 살면 너도 좋고 나도 좋다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우리들이 함께 약사여래부처님을 탄생시키고 완성시켜가고 있습니다. 이 좋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모두의 마음에 품은 마음은 좋은 마음이셨나요, 나쁜 마음이셨나요? 좋은 마음이셨지요?
그러면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한 우리들은 어떤 사람인가요? (좋은 사람입니다. 웃음)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지금 해오신 일들이 겉으로 보면 실상사를 위하는 일인 것 같고, 아니면 가족이든 이웃이든 사회든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인 것 같지요. 겉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그런데 더 잘 들여다보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잖아요. 
 
자,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즉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좋은 사람이 되었지요? 정말 즉각즉각 이루어지죠?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행동결과는 시간으로도 공간으로도 아무 간격이 없어요. 행동하는 즉시 이루어집니다.
 
내가 좋은 뜻으로 좋은 일을 완성시키는 작업에 참여를 하니까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 이제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진리가 그러한 겁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행동을 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다, 이게 법의 이치인 겁니다. 이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합니다. 법에 맞게 행동하면 너도 좋고 나도 좋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달리 말하면 법에 맞지 않게 행동하면 너한테는 좋을 수 있지만 나한테는 안 좋을 수도 있고, 나한테 좋지만 너한테는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거죠. 이게 바로 중생살이에요.  
 
지금 우리 불자님들이 약사여래부처님을 완성시키기 위해 복장불사에 동참하셨는데, 결과는 나도 좋은 사람이 되었어요. 피차가 유익해진 거죠?
그러면, 이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한 번 좋은 일 하고 좋은 사람 소리 듣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죠? 내가 좋은 뜻으로 참여해서 약사여래불을 탄생시키고 완성시켰듯이, 동시에 나도 좋은 뜻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향상되었듯이, 이러한 이치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생활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또 다시 발심하고 원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는 바로 내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를 부처로 탄생시키고 완성되도록 참여하고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만나는 남편이, 아내가, 부모가, 자식이, 친구가, 이웃에게 “당신이 본래부처”라고 알게 하고, 본래부처로서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안내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내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가 부처로 탄생되고 완성될 수 있도록 지극정성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부처로 탄생되고 완성되어가는 만큼 나도 동시에 부처로 탄생하고 완성되어가는 거죠. 이게 자리이타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라고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우리 부처님입니다.
 
본래부처의 사상과 정신, 복장불사를 하면서 가졌던 신심과 원력들이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면 우리는 진정 참다운 불자로서 평화와 행복을 이룰 것이요, 불교를 한다는 게 곧바로 한국사회에 평화와 행복을 가꾸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탄탄히 해서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집시다.
나무 약사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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