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의&반야심경 7강 : 불생불멸, 태어남도 소멸함도 본래 없네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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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삼귀의&반야심경 7강 : 불생불멸, 태어남도 소멸함도 본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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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7-01-23 15:13 조회7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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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보현법회 (2016.12.18)
[삼귀의와 반야심경] 강의 (7강)

*아래는 발췌문입니다. 첨부파일에 전문이 있습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 태어남도 소멸함도 본래 없네

도법스님 (실상사 회주)


스님의 세상사는 이야기

우리는 그 대상이 사람이든 일이든 세상이든 간에 좋은 내용을 기대하고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발전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기대와 바람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정권만 바뀐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현장에서 주체적으로 본인이 바라는 삶을 살아내고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
저는 촛불 현상에서 핵심적으로 두 가지를 주목했습니다. 하나는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하는 주권의식이 매우 강력하게 표현된 ‘개인정부’라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인인 국민의 뜻, 민의가 대단히 평화롭고 자유롭게 표현된 점입니다. 즉 주권자들이 주권자 노릇을 하고 있고, 주권자의 의사표현이 아주 평화롭게 나타났고 평화롭게 행위한 결과 평화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력히 투쟁하지 않고 평화롭게 했기 때문에 힘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죠? 아주 도도한 강물을 이루었습니다. 

***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일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감옥에 있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서 편지를 받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 신상에 관한 것인데, 저는 이번 기회에 결사본부장을 내려놓고 화쟁위원장만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결사본부와 화쟁위원회를 통해 많은 실험들을 했습니다. 실패한 것도 부지기수고 진행되지 못한 것도 부지기수입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 활동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말이 씨가 된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붓다로 살자, 둘째는 대중공사, 셋째는 화쟁실천입니다. (…)

***
사실은 제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계종단에 소임을 맡아 서울에 오가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불교공부를 많이 하게 된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혹 “스님이 공부는 안 하고 정치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비판을 하는데, 실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공부를 더 많이 했습니다.(웃음) 시시비비가 들끓는 삶의 현장에서 하는 불교공부여서 나에겐 더 의미가 컸습니다. (…)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붓다로 살자’라는 불교관과 실천론을 도출해낸 것입니다. 제게는 지난 6년 세월이 불교를 넘어 인생을 보는 안목을 훨씬 더 깊고 풍부하게 했습니다. 또 그것을 삶으로 만들어 내는데 실제적인 과정이 되었습니다. 

한국불교로 볼 때 ‘붓다로 살자’ 불교가 어쩌면 불교를 가장 불교답게 하고, 불교를 가장 자랑스럽게 하고, 불교를 가장 희망차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교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불교,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설득력 있고 의미 있는 종교가 되려면 ‘붓다로 살자 불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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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참 자유로 나아가는 참지혜의 길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붙잡아야 할 것은, 삶이란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앎이란 실제 삶으로 살았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붓다는 인생의 이치, 세상의 이치를 전부 깨치고 아셨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일생 동안, 그 깨달음을, 그 앎을 삶으로 살아냄으로써 깨달음, 앎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쳤습니다. 그러니까 깨닫기 위해서만 땀을 뻘뻘 흘린 것이 아니고, 깨달음을 삶으로 살기 위해, 붓다로 살기 위해 계속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진하신 거죠. 단순히 깨달았다는 것만으로 붓다를 훌륭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을 삶으로 완성시켰기 때문에 붓다를 훌륭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
반야심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한 마디로 공이라고 합니다. 반야심경은 아주 짧은 경전인데, 그 안에 빌 공(空), 아니 불(不), 없을 무(無)자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묶으면 ‘빌 공(空)’자 하나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 공(空)자를 제대로 알고 산 사람이 붓다이고, 이 공(空)자를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이 중생입니다. 붓다와 중생의 차이는 이 공(空)자를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의 차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잘 알고 살면 그 삶이 괜찮아지고 잘 모르고 살면 그 삶이 고단해집니다. 잘 알고 살면 그 삶이 행복해지고 잘 모르고 살면 그 삶이 불행해집니다. 

경전 상에는 그 표현이 없습니다만, 반야심경에서 강조하는 공(空)의 뜻을 실질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그대가 생각하는’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공의 본래 뜻을 이해하는데, 훨씬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사리자여 모든 사람의 비어있는 참모습엔(是諸法空相) 
[그대가 생각하는 (당신이 생각하는 또는 내가 생각하는)] 
태어남도 소멸함도 더러움도 깨끗함도 늘어남도 줄어듦도 본래 없네.” 

한 마디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대부분 본인의 생각, 사람들의 생각일 뿐 실제와는 전혀 다를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비었다’, ‘없다’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고 ‘네가 알고 믿는 것처럼 있지 않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있지 않다’,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있지 않다’. ‘사람이 생각하는 그대로는 없다’, ‘네가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이는 없다’는 거죠. 철석같이 그렇게 알고 믿었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항상 ‘나’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 ‘나’의 정체성, 즉 내가 나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나는 이래’, ‘나는 저래’. 또는 ‘내가 최고야’. ‘나만이 진짜야’ 등등 그런 ‘나’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내 안에 내 정체성의 근거가 될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바깥’이 없으면 ‘안’이라는 것도 없고, ‘너’라는 대상이 없이는 ‘나’라는 것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라고 하는 것의 정체성의 근거는 바로 ‘너’가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실제 태어남과 죽음은 무엇인가? 태어남과 죽음은 끊임없는 변화의 현상입니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바다에 파도가 생겼습니다. 없던 것이 새로 생긴 건가요? 아니면 있던 것이 그냥 움직인 현상인가요? 없었던 것이 생긴 게 아니라 있는 바닷물이 움직인 것일 뿐입니다. 마치 사람이 앉았다 일어섰다,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
사실 ‘불생불멸(不生不滅)’에 대해서만 잘 알면 반야심경을 다 안 것입니다. 공(空)이라고 하는 말이 갖고 있는 내용, 공(空)이라고 하는 말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내용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이거든요.
 
***
우리 삶이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지려면 실상, 즉 공(空)의 정신을 거듭거듭 되새기면서 잘 파악하고 잘 이해하고, 실제 삶에 적용시켜보는 것이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불자들이라고 하면, 항상 그런 관점과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 가정에서의 삶, 이웃과 함께 하는 삶, 그리고 이 세상 어떤 일이라고 해도, 우리 삶의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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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이든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공(空)의 정신으로 잘 관찰 사유하는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반야심경을 외우는 게 공부가 아니라 그 정신으로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이 공부이고 수행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해야 우리가 잘못 알고 믿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 쓰기만 하면 더 효과적이고 좋은 내용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전을 ‘지혜의 경’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자,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섰습니다. 모쪼록 참지혜의 길을 끊임없이 천착하고 천착해서 대자유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해를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정진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실상사 보현법회는 매달 세 번째 일요일 오전10시에 있습니다.
   현장에서 들으면 더욱 생생한 깨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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