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안거 결제 법어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 > 법회와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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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법회 | 2019년 하안거 결제 법어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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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19-05-25 14:51 조회6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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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5월 19일 실상사 설법전

 

회주스님 하안거 결제 법어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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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안거를 시작하면서 함께 좋은 마음을 내기도 하고, 좋은 뜻을 일으키기도 하고 맺어진 좋은 인연을 잘 가꿔서 더 좋은 관계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준비된 자료를 보면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석한 대중이 너무 각각이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풀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결국 듣는 분들을 특정하여 고려하기보다 제가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삶이 빛나는 것처럼 죽음도 과연 빛나는 것일까?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 이 빛난다는 말 참 듣기 좋죠? 불교의 어떤 말을 빛난다고 했을 거 같습니까? 우리가 늘상 외우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반야심경에서 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죠? 바로 ···’, ‘비었다’, ‘없다’, ‘아니다등입니다. 오늘 삶도 죽음도 빛난다는 말은 반야심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실상사에 들어오다 보면 천왕문 앞 주련에 비움도 빛나고 가득함도 빛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움이란 말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고, 가득함이라는 말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쓰이는 곳, 또는 쓰이는 측면만 다를 뿐 내용은 같은 의미입니다.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나라는 말을 놓고 보면 어떻습니까? 일반적으로 삶이 빛난다는 말은 동의가 되는데 죽음도 빛난다는 말이 이해되고 동의되십니까? 안되죠? 죽음이 빛나는 것이라면 분명 죽음도 좋아야 할텐데, 죽음을 싫어하지 않아야 할텐데, 그렇지 않죠. 삶이 빛난다는 말은 쉽게 이해되고 동의되지만 죽음이 빛난다는 말은 우리의 일반적 사고와 신념으로는 이해되거나 동의되거나 수긍이 안 되죠. 그런데 붓다께서, 당시 인생의 참모습에 대해서 깨달은 다음, ‘인생은 이런거야하고 설명한 내용을 깊이 음미해보면, 우리가 알고 믿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삶은 빛나고 죽음은 암흑이다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지식이고 믿음입니다. 삶은 기쁨과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죽음은 슬픔과 절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거죠. 일찍이 선불교에선, 나의 참모습, 인생의 참모습, 세상의 참모습을 유아독존, 본래붓다, 본래면목이라고 표현해왔습니다. 그러므로 무수한 고승들이 본래면목을 깨달아야 한다, 본래부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전통을 이어서 붓다로 살자 불교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인간 붓다, 역사의 붓다는 실제 어떻게 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경전을 꼼꼼하게 따져보면 붓다도 깨닫기 전에 잘 모를 때는, 삶은 빛나고, 죽음은 암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삶을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하는 암흑에서 벗어나야 하잖아요. 밝고 희망차면 당연히 그냥 가도 되지만, 어둡고 절망적이면 어떻게든 해결해야 되잖습니까.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해답을 못 찾았습니다. 더 편안하고, 더 재미있고, 더 소유하고, 더 얻고, 더이룸으로써 행복해지려는 세속적인 방식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종교의 길인 출가를 합니다. 당시 최고의 길로 알려진 깊고 깊은 선정수행과 고행수행을 했지만 해답은 못 찾았습니다. 불자들이 자랑처럼 강조하는 육년 고행을 했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장좌불와와 용맹정진입니다. 그곳에도 해답이 없었기 때문에 버리고 떠납니다. 이제 어떤 길도 없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길을 가야했습니다. 냉철한 성찰과 사유를 통해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왜 발생했는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해결하는 길은 무엇인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자신을 상대로 거듭거듭 관찰사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참모습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참모습을 알고 보니 삶도 나의 참모습이고 죽음도 나의 참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빛나듯이 죽음도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삶만 나의 진면목이고 죽음은 나의 진면목이 아닌 것이 아니고, 삶도 나의 본래면목, 죽음도 나의 본래면목이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잘못 봤을 땐 죽음은 암흑이었는데 제대로 알고 보니, 삶이 빛나듯이 죽음도 빛나는 나의 진면목이더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정리하면 자신의 참모습을 알고 삶을 사니, 삶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난다는 뜻입니다. 붓다의 그 삶을 경전에선 해탈 열반의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해탈열반을 요즘 말로 바꾸면 자유롭다, 여유롭다, 평화롭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습니까? 삶이 자유롭고 평화로우면 충분하겠습니까? 아니면 뭔가 특별한 것이 더 있어야 하겠습니까? 충분하겠죠. 우리 삶이 참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우면 굳이 극락세계에 가려고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 여기가 그대로 극락이기 때문입니다. 붓다가 이 사실을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교리적으로 보면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고, 과정도 어렵게 해야 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교리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맥락을 잘 짚어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불교가 뭘까 해서 다른 말로 바꾸면, 자신을, 인생을, 세상을 있는 사실대로 잘 알고 살면, 삶도 자유롭고 죽음도 자유롭다, 삶도 빛나고 죽음도 빛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세 가지, 자기자신의 진면목을, 인생의 진면목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진면목을 잘 알면,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단순명료한 내용을 무수한 사람들 사정에 따라, 이사람 저사람 형편에 맞추어 그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보니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처럼 되었고 그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습니다. 그것이 팔만사천법문입니다.

지금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말씀드리고 있는데,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실천의 진리인 중도, 존재의 진리인 연기, 공으로 표현됩니다. 공과 연기의 의미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이 빛난다는 말입니다. 잘 몰라서 그렇지, 제대로 알고 보면 우리의 참다운 모습은 언제 어디에서나 늘상 빛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내용을 전통적으로는 유아독존’, ‘본래부처’, ‘본래면목이란 개념으로 표현하고 실천해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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