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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법문 | [성도재일] 불교의 최초원형은 '깨달음 이후 붓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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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1-01-20 07:25 조회8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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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재일 법문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 발행하는 잡지 <인드라망> 신년호에  

회주스님께서 쓰신 글을 직접 읽어주시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신축년 새해,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인드라망 벗님들에게 띄우는 도법스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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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최초원형은 '깨달음 이후 붓다의 삶'

불교수행자 1호, 붓다의 불교수행

 

………  

붓다가 깨달은 것은 ‘중도의 팔정도행’

불교수행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

‘중도의 팔정도행’을 계승한 것이 본래붓다의 계·정·혜(戒定慧) 삼학수행

………  

 

벗이여, 흰소의 새해가 밝았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처럼 잘 지내리라 믿네.

올 한 해 내내 청안청락하시길 손 모으네.

 

  

요즈음 코로나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불교수행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받네. 사실 내 삶으로 와보면 두 가지 물음이 ‘인생이 뭐야? 어떻게 살아야 돼?’ 하는 하나의 물음으로 모아지네. 엄밀하게 보면 내가 불교수행자로 살아가는 이유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그 답을 삶으로 살아가기 위함인 셈이네. 병이 생기면 약을 찾듯이 질문이 생겼으니 그에 답을 하는 차원에서 편지를 쓰네. 스스로의 삶을 정리도 할겸.

 

“참된 진리는 어려울 것이 없네.

 오로지 분리시켜 취하고 버리는 것을 꺼려할 뿐

 다만 ‘좋네, 싫네’ 하고 판단하는 마음만 조작하지 말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무사태평할 터이네.” 

  - 《신심명》

 

벗이여, 뜬금없이 《신심명》을 들고 나오는 이유를 눈치챘는가?

잘 알고 있듯이 《신심명》은 선불교 사상의 백미로 평가받는 책이네. 마침 대중들과 함께 《신심명》을 공부하게 됐네. ‘잘됐다’ 하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것을 자랑하려고 첫 구절을 내놓았네.

 

 《신심명》을 쓴 승찬스님은 한센병 환자로 알려져 있네. 그런데 혜가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다음 내놓은 위풍당당한 깃발이 ‘불교수행, 어려울 것 없다’이네. 

 

내가 불교수행자로 살아온 세월이 55년이네. 불교공부와 수행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어려웠네. 기분을 따른다면 집어치우고 싶을 정도였네. 그런데 승찬스님이 보내눈 ‘어려울 것 없다’는 소식은 나에겐 너무나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었네. 그대는 어떤가? 이번 기회에 ‘어려울 것이 없네. 왜 그런가? 매우 인간적이고 전인적이고 상식적이므로’라는 관점에서 내가 정리해온 불교수행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네.

 

 

불교의 최초 원형은 ‘깨달음 이후 붓다의 삶’

 

요즈음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들이 많은데, 내가 생각할 때 불교의 최초 원형은 교리가 아니고 깨달음 이후 붓다의 삶 자체라고 보네. 붓다의 일생 삶은 당신이 깨달은 내용인 ‘중도의 팔정도행’이었네. 중도의 팔정도행을 기본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병에 따라 약처방으로 내놓은 것이 어마어마하게 양이 많고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어렵게 된 불교교리이네. 

 

붓다께서 전인적 삶으로 살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 ‘중도의 팔정도’를 갈래쳐서 정리한 것이 ‘계·정·혜 삼학’이네. 실상사에서는 그 내용을 사부대중의 일상생활에 녹아들도록 하려고 한글예불에 담았네.

 

“언제 어디에서나

 뭇생명 두루 이익케 하는 큰 자비계의 향

 한결같이 흔들림 없는 큰 선정의 향

 자신의 참모습이 본래붓다임을 참되게 아는 큰 지혜의 향을

 저희 지금 정성 모아 마음의 향로에 사르오니

 삼학의 청정한 향기 온 실상사에 가득하사……”

 

세세하게 풀기 전에 먼저 정리할 것이 있네. 

깨달음을 실천하는 불교수행자 1호는 붓다이시네. 그의 일생은 깨달음의 실천인 중도의 팔정도행으로 일관되어 있네. 더 일반화시키면 자신의 참모습인 인생을 참되게 알고, 그 참된 앎을 온전하게 일상의 삶으로 사셨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그 길을 사람들에게 안내했네. 그러므로 붓다를 인생교사라고 하고,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했네.

 

그 말은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 불교수행이지 깨달음이 없는 수행은 불교수행이 아니라는 뜻이네. 그러니까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 불교수행이라는 말이네. 여래가 뜻하신 깨달음이 종교인 불교를 녹이고 또 녹이고, 응축하고 또 응축하여 한 마디로 드러낸 것이 ‘본래붓다’이네. 이제 그 본래붓다의 정신으로 본래붓다의 삼학 수행을 설명하려고 하네. 

 

 

본래붓다의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 수행

 

첫째, 본래붓다의 지혜수행이네.

‘전식득지(轉識得智), 양변에 빠진 지식과 믿음의 삶을 전환하여 중도에 의한 지혜와 확신의 삶을 이룸’

 

붓다가 깨달은 내용을 온전하게 드러낸 중도의 한 마디가 ‘본래붓다’이네. ‘사람은 본래업보중생’이라고 하는 양변의 지식과 믿음이 판치고 있을 때, 그 지식을 전환하여 ‘사람은 본래붓다’라고 중도에 의한 지혜와 확신의 말씀을 하셨네. 그 뜻에 따라 자신의 참모습, 존재의 참모습이 본래붓다임을 잘 이해하여 참되게 알고 그 앎을 온전하게 삶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네. 그렇게 되도록 기꺼이 최선을 다해 줄기차게 학습하고 탁마하는 것이 본래붓다의 지혜수행이네. 그것이 붓다의 삶이었네.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이기도 하네. 살아서도 죽어서도. 금생에도 내생에도.

 

둘째, 본래붓다의 선정수행이네.

‘이고득락(離苦得樂), 괴로운 삶을 벗어나 안락한 삶을 이룸’

 

자신의 참모습인 본래붓다가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도록 하는 실천이네. 노는 입에 염불하듯이 언제 어디에서나 기꺼이 최선을 다해 매 순간 화두를 들고 또 들면,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분노, 증오, 원한 또는 소유욕, 승리욕, 지배욕 따위의 번뇌들이 바로바로 떨어져 나가네. 발을 붙이지 못하네. 초기경전식으로는 제2의 화살을 쏘고 맞고 하지 않게 되네.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본래붓다의 선정수행이네. 그것이 붓다의 삶이었네. 내가 살아야 할 삶이기도 하네. 

 

셋째, 본래붓다의 계율수행이네.

‘혁범성성(革凡成聖), 범속한 삶을 혁신하여 성스러운 삶을 이룸’


자신의 참모습인 본래붓다가 현재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실천이네. 가능한한 매 순간순간 기꺼이 최선을 다해 지극한 자비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고 활동하는 것이네. 

 

언제 어디에서나 깨달음의 내용인 대비원력의 마음으로 아궁이의 나무가 잘 타도록 하는 부지깽이처럼 뭇생명들을 두루 이익케 하는 것이 본래붓다의 계율수행이네. 그것이 붓다의 삶이었네. 내가 살아야 할 삶이기도 하네. 살아서도 죽어서도, 금생에도 내생에도.

 

붓다가 뜻한 바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네.

 

깨달음의 내용인 본래붓다의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이 전인적인 일상의 삶으로 무르익어 물 흐르듯이 펼쳐지는 상태를 붓다는 무상정등각의 삶이라고 했네. 그 전형을 구체적인 삶으로 직접 보여준 사람이 바로 우리의 스승 붓다이시네. 드디어 대혜스님이 ‘익숙한 것은 생소한 것으로, 생소한 것은 익숙한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교수행’이라고 하신 말씀이 격하게 공감되네. 

 

‘사람은 본래업보중생이야.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 대단히 익숙하지만, 반드시 버려야 할 양변에 빠진 우리의 지식과 믿음이네. ‘사람은 본래붓다야. 본인의 삶은 주인인 본인이 창조하는 거야’ 하는 것이 매우 생소하지만, 반드시 삶으로 살아내야 할 중도에 의한 우리의 지혜와 확신이네. 깨달음의 실천자인 붓다의 삶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면 불교의 참모습이 환하게 드러나네. 따라서 불교수행은 매우 인간적이고 상식적이고 전인적임을 알 수 있네. 

 

인드라망공동체 식구들이 걸어가야 할 길도 이 길이라고 보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 거듭거듭 학습하고 탁마하는 수밖에 무슨 다른 길이 있겠는가.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어느 서양 도인처럼, 너도나도 그렇게 알고 살면 코로나 이후에도 희망찰 것이네. 

 

친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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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19일 성도재일맞이 철야정진법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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