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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월요법석_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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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미쌀 작성일20-03-18 22:46 조회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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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월요법석_스케치 / 2020. 3. 18

자신에게 드는 회초리

 

새벽 450, 실상사의 하루는 아침을 여는 범종소리로 시작된다. 아직 어두운 시간이지만 여느 절 보다는 늦은 새벽예불이다. 요즘 사람들의 생활의 리듬에 조금 더 맞추기 위해, 혹은 스님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몇 년 전부터 새벽 예불시간을 늦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일반 사람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도가 있었다.

아침 825분이 되면 범종 대신 목탁이 울린다. ‘아침을 여는 법석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작년부터 실상사에서는 매일 아침 830분부터 약 20-30분 동안 아침을 여는 법석을 진행한다. 이 때는 스님들을 비롯한 실상사 구성원(종무소, 공양간, 템플스테이 담당자와 참여자)들이 함께 한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예불문(칠정례)도 한글로 번역하여 번역본으로 합송하고 이해가 어려운 반야심경 대신 공동체 구성원이 직접 쓴 발원문을 읽는다. 함께 읽는 참회문도 원본을 축약하여 짧게 줄였다고 한다. 그렇게 공동체 식구들이 둘러 앉아 마음을 모으며 하루를 연다.

매일을 하루 같이 비슷하게 진행되는 아침법석이지만 월요일은 조금 특별하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하루만은 공동체의 다른 영역 구성원들도 모두 모여 함께 한 주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작은학교, 한생명, 생명평화대학, 실상사농장). 그래서 요즘은 월요일이면 약 30-40여명이 함께 모여 하루를 시작한다.

이날은 아침법석 의식에 있어서도 특별히 추가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한 주를 돌아보는 마음나누기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모두가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 몸과 마음상태가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 지 등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한다. 30-40명이 모두 한 마디씩 하다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곤 한다.

다시금 그 시간을 떠올려보니 이 장면만으로도 어떤 감동이 있고, 또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디언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곤 했다는데 그 모습이 오버랩 되며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명상을 통한 감각적 합일이 아닌 삶과 삶이 만나고 부딪쳐 서로의 속으로 들어가는 실제적 합일의 장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론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가 떠오르기도 한다.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라니! 사실 이것은 직접 민주주의의 장 이상의 장이다. 11표를 넘어, 그리고 모두의 목소리를 단지 인정하는 것도 넘어 그 목소리 모두가 매우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인정을 넘어 존중된다). 의견이나 주장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모두 보석처럼 모셔진다. 무엇보다 이 자리는 매우 재밌다. 이야기란 본래 재미난 것인데 지금 현존하는 사람들이 실제 겪고 있는 생생한 리얼 스토리이니 어찌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여행을 앞둔 여행자처럼,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손녀처럼 설렌다.

이번 주에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행했다. 그 중 유난히 마음을 때렸던 말은 스님의 고백담이다.

 

<자신에게 드는 회초리>

스님은 어떤 사람이 자기 말만 옳다 하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며 고집 부리는 모습을 보고 무식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주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며 스스로를 질책하셨다. 마치 자신의 말을 회초리 삼아 스스로를 때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말을 듣는 내 마음도 뜨끔했다. 나는 과연 안 그런가.

얼마 천 꽃샘추위에 봄눈이 내렸다. 누구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그 눈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그럼에도 매화는 여전히 싱그럽고 향기롭다.

나는 스님이 매화 같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차가운 평가판 위에 올려놓고 냉철한 비판의 바람 한 가운데 서 있길 자처하면서도 그 향기를 잃지 않아서. 그렇기에 그 향기는 후각보다 더 깊은 곳까지 퍼진다.

향기로운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우리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이 게시물은 실상사님에 의해 2020-03-25 10:33: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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