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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세상

[한겨레휴심정] 원수였던 외등이 고마운, 변화무쌍 이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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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상사 작성일20-10-09 11:51 조회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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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였던 외등이 고마운, 변화무쌍 이 내 마음



일체유심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청명한 하늘이다. 옷소매에 스미는 초록 바람의 기운이 제법 서늘하다. 아하! 어느덧 추고마비(秋高馬肥)의 계절이네. 이런 날에는 면벽 좌선도 억지스럽고 독서도 시들하다. 그러니 들길 따라 산길 따라 걷는 일이 최적의 멋이고 맛이 아닐 수 없다. 왼쪽에는 나지막한 산을 끼고, 오른쪽에는 논길을 끼고 걷는다. 
좌보처(左補處) 청산 보살이요, 우보처(右補處) 전답 보살이 나를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내가 부처라는 말씀은 아니다. 관셈 보살.~

내 처소에서 나와 그렇게 길을 따라가다 보면 놀이터를 만나게 된다. 실상사가 있는 산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노는 곳이다. 놀이터의 기구는 쇠를 전혀 쓰지 않고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지리산에 귀촌한 아버지들이 협동하여 만들었다. 얼마 전에 만든 짚라인이 인기라고 들었다. 귀촌한 2세들이 어느덧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산내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백명을 훨씬 넘는다. 아버지들이 공동의 자녀들을 위해 공방에서 배운 기술로 놀이 기구를 만들때는 가슴에 흐뭇한 기쁨이 솟았을 것이다.

방과 후 놀이터 옆을 지나가다가 노 보살님을 만났다. 이 곳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이다. 보살님은 비탈에 있는 고사리 덤불을 낫으로 베고 있다. “아니, 힘드신데 뭐하시려고 고사리를 베고 계세요” 고사리는 4월 즈음에 파릇한 순을 수확한다. 이미 말라 시들은 고사리는 쓸모가 없다. “시님이구만요, 여기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길래 주우려고 고사리를 베고 있지라요.” 그렇지. 여기에는 거목이 된 도토리 나무가 한 그루가 겸손하게 서 있다. 씨알이 굵은 도토리가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산책할 때 알맹이를 주어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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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만드는 솜씨가 없는 나는 유독 도토리묵은 아주 잘 만든다. 이는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이 인정한다. 만약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내게로 오시라. 맛을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 하여튼 거친 덤불을 헤치고 계시는 노 보살님을 보고 이제 이곳에서는 도토리 줍기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도토리 나무 옆에 밤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알밤을 주으러 온 초등학생이 실망하고 가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은근 찔렸다. 그 학생이 오기 바로 전에 내가 알밤을 주웠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나무이고, 공짜이고,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라고 하지만, 산중에서는 내 몫을 포기하는 일도 자연의 질서이다. 까치와도 감을 두고 함께 나누는 마음이 김남주 시인이 말한 조선의 마음이니 작은 즐거움도 잘 나누어야 한다.

고사리 덤불을 베고 있는 보살님을 보니 문득 어느 일화가 생각난다. 도법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도법 스님이 삼십대 젊은 시절, 금산사 심운암에 몇 명의 스님들이 참선정진 하고 있었다. 그 대중 가운데 A스님은 마음 씀이 넉넉하고 감성이 풍성하신 분이다. 산책을 매우 좋아한다. 오솔길을 걷다가 낙엽이 무성하게 쌓인 작은 샘에서 물을 마시며 갈증을 달랜다. A스님은 함께 사는 스님들에게 옹달샘 자랑을 한다. 물맛이 천하 일품이란다. 그 물을 마시고 나서부터 뱃속이 편안해지고 눈이 맑아지고 기운이 솟아나고 밥맛이 훨씬 좋아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마르지 않는 산기슭의 맑은 샘물-(無窮山下泉, 무궁산하천)

산중에 사는 벗들에게 널리 공양하노니-(普供山中侶, 보공산중려)

저마다 표주박 하나씩 가져와서-(各持一瓢來, 각지일표래)

모두 다 둥근 달 가져가시게나-(總得全月去, 총득전월거)

아마도 그 스님은 완당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 선생의 시를 가져와 낙엽에 쌓인 옹달샘의 물맛을 찬탄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깊은 산중의 물맛은 달고 청량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물맛에 일대 반전이 일어났다. 사연인즉 이렇다. 심운암에 함께 사는 B스님은 깔끔하고 부지런하다. 잠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어느 날 B스님이 A스님이 늘상 그토록 고무찬양하던 옹달샘을 청소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옹달샘 주변의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몇 년 동안 쌓인 낙엽을 바닥이 드러나도록 치웠는데, 아뿔싸! 개구리와 뱀과 지렁이와 여러 종류의 곤충과 짐승들의 사체가 가득한 게 아닌가. 대청소를 마치고 돌아 온 스님은 대중 스님들에게 그 사실을 실감나게 풀어놓았다. 실상을 들은 스님들은 그저 허허실실 웃을 수 밖에. 그런데 문제는 평소 옹달샘 물맛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탄하던 A스님에게 일어났다. 다음 날부터 소화가 안 되고 몸에 기운이 없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후에 A스님은 암자를 떠났다. 알고 보니 이곳이 명당터가 아니라는 한말씀을 남기고 말이다. 암자 옹달샘 실화를 들은 독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 원효 대사 해골 물 사건과 다르지 않네”

원효와 의상의 해골물에 얽힌 이야기는 알고 계시리라. 지치고 힘들고 목이 말라 한 밤중에 마신 물이 감로의 맛이었는데, 다음 날 밝은 볕에 그 물이 해골에 고인 물임을 알고 토한 원효 스님. 그 순간 원효는 온몸이 떨렸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卽種種法生) 심멸즉종종법멸(心滅卽種種法滅),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온갖 희비가 탄생하고, 한 생각이 달라지면 온갖 희비가 사라진다’는, 삶을, 통째로, 바꾼, 깨달음이, 온, 것,이다. 아하! ‘너’ 때문에 나의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보는 ‘내 생각’에서 괴로움은 발생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실상을 깨달은 것이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 다는 것, 모든 희비와 시비는 마음의 반영이고 투사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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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8월에 실상사에서도 ‘일체유심조’ 사건이 발생했다. 4박5일 일정으로 불교 공부를 하는 ‘배움의 숲’이 열렸다. 그 중에 한 분이 마지막 날 이런 고백을 했다. 낮에 공부를 마치고 밤에 자리에 누워 잠을 자려고 하는데, 마당의 외등 불빛이 신경이 쓰여 편안하게 잘 수가 없었단다. 좀 예민하신 분인 모양이다. 그런 그 분이 사흘째인가,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좀 무서움을 타는 분인데 외등의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 안심이 되더란다. 그렇게 외등이 고마울 수 없더란다. 다음 날 그 분은 생각했다. 이 무슨 마음의 조화인가. 외등은 거기 그 자리에서 그 밝기로 서 있을 뿐인데, 나는 외등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깊이 생각해 보니 원망과 고마움은 내 마음의 조작이었음을 안 것이다.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이라 하겠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소하고 구체적인 기쁨과 괴로움, 오해와 시비, 원망과 감사는 많은 부분이 내 마음의 일방적인 조작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몸이 몹시 피곤하고 지치면 같은 말이라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기분이 좋을 때는 상대의 말에 너그럽게 반응한다. 이렇게 우리네 삶은 사사건건이 일체유심조가 아닐 수 없다. 원효의 해골물이, 암자 스님의 올달샘 물맛이, 불교 공부하러 온 어느 분의 외등이,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의 여러 조건을 바꾸려는 노력과 더불어 시시각각 일상의 사사건건에 대해 편견 없고, 무심하고, 담담하고, 침착하게 바라 볼 일이다. 그런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이 아니겠는가. 내 삶의 행복은 동시 수행으로 성취된다. 세상을 바꾸는 노력과 내 마음을 바꾸는 동시 노력이 바로 수행이고 깨달음의 실천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임제 선사가 말했다.

그대, 서 있는 곳에서 휘둘리지 마시라. 그리하면 그대 삶이 온전히 진짜라네,


글 법인 스님(실상사 한주 & 실상사 작은학교 철학선생님 &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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